에디터 안재훈
말복을 향해 한껏 달궈진 자유로 위를 목도리 도마뱀처럼 달려간다. 단숨에 너무 심하게 달린 건가? 발바닥 저 끝에서부터 저릿해온다. 여기로 달리면 자유를 만날까 싶어 달려가는 길이다. 너무 만나고 싶어서 열심히 달린다. 머리 위 자유를 감시하는 누군가의 카메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달린다. 분명 내 속도는 자유를 쉽게 내주기 싫어하는 누군가의 허용 범위를 벗어난 속도임에 틀림없었다. 그래, 까짓 거 자유를 만난다는데 몇 만원이 문제냐, 하고 계속 달린다.
그런데 달릴수록 기분이 이상해진다. 점점 길은 좁아지고 분위기가 삭막해진다. 자유라는 글씨가 매우 작게 느껴지는, 달리고 또 달려도 크게 자유를 느낄 수 없는 자유로 위에서 어디까지 달려야 자유를 만날 수 있는지 갑자기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유로는 말이 없다. 입을 지퍼로 잠그고 콘크리트로 묻어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아주 오랫동안 감춰진 비밀이기에 그 답을 잊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결국 의문만 안은 채 몸이 가는 대로 자유로의 끝까지 내달렸다. 이제 더 물어볼 것도 없다. 거기가 끝이다. 그 끝은 정교한 바리케이드로 수놓아져 있다. 국토의 허리 부근에 있는 중요한 혈관 중 하나인 자유로의 끝이 이렇게 막혀있다. 혈이 막히고 근육이 뭉친 것이다. 위태로운 상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방치한다면 영원히 불구가 될지도 모를 허리 환자의 위태로운 상태가 올 해로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다. 뚫려야 하는데, 뚫어서 숨통이 트이고 맑은 피가 흘러야 하는데, 저 너머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다리가 하나 있지만 이미 불구의 다리다. 오랫동안 불구였다. 겉으로는 성해보여도 사실 오랜 마비로 기능 상실이다.
갈 수 없으니 어쩌랴. 유턴(U-turn)이다. 그렇지, 인생은 한 방, 아니 유턴이지. 찍고 돌아가는 거지. 아닌 거 알았으면 돌아가는 거지. 뭘 미련을 가져? 못 본 척,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돌아가는 거지. 그렇게 돌아가다 보면 잊혀지는 거지. 인생 다 그런 거 아냐? 배운 대로 살아, 이 사람아. 마음의 소리는 냉혹하다.
그래서 돈다. 우아하게 빙그르르 돈다. 완전히 돈다. 완전히 돌아버리니까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완전히 돌고 나니까 오른쪽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뭔가가 보인다. ‘임진각 평화누리’라는 이름이 그늘에 감춰져 있어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아니 근데 총 칼을 든 형제가 서로를 바라보며 면벽 수행을 한지가 어언 50여년이 넘었는데, 그 삭막하기 그지없는 도량에 웬 공원? 오랜 수행 끝에 나온 사리와 같은 자유를 향한 열망의 결정체인가? 아니면 냉전의 체제 다툼 속에서 튀어나온, 삶의 여유와 문화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의 괴물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우선 여기서 임진각 평화누리가 홈페이지를 통해 스스로를 소개하는 내용을 언급하는 게 좋겠다. 평화누리는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계기로 조성된 3만평 규모의 대형 잔디 언덕을 중심으로 한 일상속의 평화로운 쉼터.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과 수상카페 ‘카페안녕’, 바람의 언덕(바람개비 언덕), 경기도를 대표하는 기부존 ‘통일기원돌 무지’, ‘생명촛불파빌리온’ 등으로 구성되며, 공연, 전시, 영화,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여 분단의 상징이자 냉전 시대의 잔상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이라는 궁극적 평화의 메카로 변모시켜 가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평화의 메카라…. 그렇지. 여기야말로 평화의 메카가 되기에 적합한 곳이지. 평화를 꿈꾸며 총구 끝에 수줍게 꽂아둔 한 송이 꽃처럼, 임진각이야말로 아직도 마르지 않은 연기가 자욱한 곳이니까, 그야말로 민족 아픔의 상징이니까, 이제 꽃만 꽂으면 되니까, 여기다 꽃을 심고 잔디 언덕을 가꾸고, 평화의 음악을 연주하면 평화의 메카가 되겠지. 동심의 세계와 유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바이킹은 필수적으로 있어야겠지. 그렇게라도 해서 평화가 온다면야. 그렇게라도 해서 자유가 회복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그런 소원을 가지고 바람의 언덕에 선다. 바람개비가 돈다. 너도 유턴이냐? 대답이 없다. 날을 잘못 잡았다. 대답을 하지 못할 만큼 너무 더운 날이다. 바람의 언덕이라지만 간간이 부는 바람도 작열하는 태양에 맥을 못 춘다. 바람도 벗기지 못한 나그네의 옷을 따뜻한 햇볕이 벗긴다는 동화가 문득 떠오른다.
평화누리를 구석구석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너무 더운 관계로 다 접었다. 그냥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바람은 남과 북을 아랑곳 않고 넘나든다. 나는 지금 북의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의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인가. 이건 정말 눈곱만치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바람의 국적이 뭐가 중요한가. 바람이 땀을 식혀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바람은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고 국적과 사상을 검증하려 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다 마찬가지라고 갈릴리의 한 청년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바람의 언덕에는 몇 단계로 형태가 구분된 사람 형상의 예술작품이 하나 있다. 철근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사람, 사람으로 보일 뿐 눈, 코, 입도 없고, 팔과 다리의 구분도 없다. 마치 사람이 물에서 뭍으로 나오는 것처럼 가슴까지 뭍으로 나와 있는 모습, 몸의 반만 나와 있는 모습, 무릎까지 나와 있는 모습, 전신이 다 나온 모습의 4단계로 나눠져 있다. 전신이 다 나온 그 사람의 형상은 북녘 땅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의 키가 자그마치 11m나 된다. 북녘 땅을 그리워하는 만큼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만큼의 키가 아닐는지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이 사람의 형상이 언덕 아래에서부터 나와 북녘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기다림에 지쳐 점점 땅 속으로 뒷걸음질 쳐 사라져가는 모습인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의 모습이 점점 뒤로 가라앉는 모양인 것 같아 섬뜩한 마음이 든 게 사실이다. 유턴? 아니길 바란다.
대나무 인간, 그 사이로 바람이 휭 지나간다. 어디로부터 비롯된 바람인지는 모른다.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의 형상은 자신의 몸 전체를 울려 평화누리를 찾은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웅변하고 있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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