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한 시간만 달리면 만날 수 있는 경춘가도, 그 끄트머리 즈음에서 오돌토돌 오솔길로 빠져나온다. 실한 아람이 맺힌 밤나무에 탄성을 지르는 사이 꺽다리 해바라기와 과수나무에 둘러싸인 한적한 건물 앞에 닿는다. 강아지 ‘찬미’와 ‘은혜’가 먼저 달려와 찧고 까불며 반기는 곳, 예예동산이다.
사람이 머물고, 쉼이 피어나는 곳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 창 가득한 가을볕 아래 고들고들 말려가는 햇콩이며 호박이 눈에 들어온다. 벽에 붙은 작은 방명록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잘 지내고 갑니다!’ 등이 쓰여 있는 카드들이 오밀조밀 달렸다. 영락없는 할머니네 시골집이되, 먼지 한 올 없이 깔끔하고 밝은 것이 특징이랄까.
‘예수님 앞에서 예술의 기쁨과 쉼을 누리는 사람’과 ‘하나님 앞에 “예, 예” 하고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예예동산은 지난 7년 간 진흥아트홀 관장을 지낸 유명애 권사(60) 부부가 사는 집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열려 있는 집이다. “삶이 바쁘고 지칠 때면, 조용히 기도하며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갈 곳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자연과 함께 하는 영성적 공간에 대한 갈망이 지금의 예예동산을 만들게 했죠.” 애초 생각했던 건 노년을 위한 집이었다. 그러나 예예동산을 열고 2년 여 동안 여기저기 소식을 듣고 쉴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벌써 어림잡아 5~600명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쉬었다가 떠났고, 1년 가까이 지내다 가는 장기 투숙객도 적지 않았으며, 요즘엔 교회의 작은 모임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고.
문은 열려 있으니 그냥 들어오면 되고, 들어오자마자 그냥 ‘가족’이 된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한 집에서 한 솥밥 지어 먹으며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짐을 나눈다. “요즘 들어 자살이 부쩍 많이 늘었잖아요. 뉴스를 들으면 참 가슴이 아파요. 그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사흘쯤 밥이라도 나눠먹고 갔으면 저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섬기는 유명애 권사. 고급스런 전원주택 마님으로 살며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앞치마를 멘 채 스스로를 ‘예예동산 섬김이’로 소개하는 그는 영락없이 푸근한 옆집 아주머니 같다. “참 신기하게도 먹을거리가 늘 끊어지지 않아요. 쌀이 떨어지는 날, 쌀이 들어오고, 과일이 떨어지는 날에는 과일이 들어오죠. 함께 있는 식구들도 너무 재미있대요.” 지치고 아픈 사람이 머물며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고 진정한 영혼의 쉼을 피워내는 예예동산은 그들이 진정 꿈꿔온 바로 그곳, 때를 따라 채우시는 그 분의 은혜가 넘치는 곳이다.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삶은 오랫동안 가져온 소망이었다. 몸이 아직 건강할 때 시골에 집을 짓고 혈연가족에서 벗어난 대안가족 공동체를 꾸려보자는 결단은 남편인 권태환 교수(65)의 꿈과도 다르지 않았다. ‘노인기관으로부터 관리 받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노년’, ‘심리적으로 노후가 준비된 노인이 덜 준비된 이웃과 가족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삶’은 이들 부부가 함께 그렸던 그림. 이는 권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이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5년 여 준비기간이 끝나고 예예동산이 완성되던 날, 100명이 넘는 친지와 예술가들이 먹을거리를 싸들고 와 함께 춤추며 기뻐했다.
나이가 들수록 한 몸을 건사하기 편리한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친지들의 우려와 달리 시골에 집을 짓고 무공해 식탁을 꾸리면서 얻게 되는 득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소음으로부터 해방된 맑은 공기 속에서 누리는 자연과의 친밀함은 때로 찾아오는 도시 손님들에게까지 쉽게 전염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일만으로도 행복감에 충만해진다.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무엇보다도 사람의 영혼을 건강하게 살찌우고 돌보는 일이기에 이들 부부는 ‘나눔의 기쁨’으로 매일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이토록 온전한 그들의 살아있음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진정한 예술작품에는 영적 지배력이 있어요.” 벽면 곳곳에 걸린 그림과 사진 등의 작품들이 들떴던 마음을 정말 안정시켜 주는 듯하다. 수채화가이기도 한 유명애 권사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이 작품들을 바라보며 일상에 물드는 예술의 힘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다.
2층은 주로 게스트가 쓰는 곳이다. 아예 실외에서 따로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이 공간은 소파와 TV, DVD 플레이어, 그리고 책 가득한 서가로 이루어져 있어 편안한 쉼과 충전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게다가 바깥을 향하는 문을 열면 나무 바닥을 널찍이 깔아놓은 테라스가 있어 식사와 다양한 모임 등이 가능하다.
계단을 따라 3층에 들어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늘을 덮는 통유리가 유난히 반짝이는 작은 기도실이 나타난다. 낮에는 푸른 산이 그대로 들어오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조명삼아 기도할 수 있는 공간. 이곳에서의 새벽기도로 예예동산의 하루가 시작된다고.
예예동산에서 가장 놀라운 공간은 단연 지하 갤러리. 호젓한 이 집 어디에 이런 갤러리가 숨어있을 거라 상상할 수 있을까. 유명애 권사가 진흥아트홀 관장을 지내면서 차근차근 모아 온 작품들 100여 점이 번갈아가며 걸린다. ‘놀토’마다 미술을 배우러 오는 지역 어린이들과 매주 목요일 열리는 성인 그림반 수업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하에는 추억의 헌책방을 생각나게 하는 서가와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쉬지 않는 유명애 권사의 낭만적인 작업실도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예예동산의 공간들은 마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조근조근 말을 걸어온다. 기독교와 예수님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영성의 길을 걸어가도록 돕는 것. 그래서인지 유명애 권사는 예예동산이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충실히 진정한 쉼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내 나이 오십,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넘치네’
갤러리 어느 귀퉁이에 놓여 있던 유명애 권사의 ‘자화상’ 이라는 작품 하단에 쓰여 있던 글이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되면 그림 속의 얼굴만큼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자신의 싸움을 힘겹게 치러낸 기억을 안고 있는 만큼 삶의 목적을 잃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쉬어가는 곳이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뿌려진 예예동산. 이제 치유의 열매를 거둘 차례다.
춘천시 신동면 증삼리 107-10 033)261-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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