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죄책감일까. 미련일까. 후회일까. 도대체 이 아픔은 무얼 먹고 자랐기에, 이토록 아플까. 그저, 아프다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엉켜, 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놓은 것 마냥 모든 것을 멈추어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이란 놈을 그냥 밥 볶아 먹어 버렸으면 좋겠다. 마음이란, 그렇게 내 맘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건 다시 내 마음의 문제다. 그 어떤 것보다도 내밀한 음성이 울리는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멀리 내쫓지 않아야 하는 것. 감수성 훈련 지도자 황현수 목사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만나고, 타인의 마음과 만날 때에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마석의 다윗동산에서 3박 4일의 감수성 훈련을 한창 지도하고 있던 그를 만나 잠자던 감성에 말을 걸어 보았다.
예술다운 삶을 사는 자의 여유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으로 대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남도 저 끝의 임자도라는 천연의 섬에서 목회하는 사람답게, 주변 자연과 그리 조화로울 수 없다. 풍요로운 감수성을 이루는 재료가 자연 속에서 살아감 그 자체임을 이미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온 몸의 세포가 세상의 기운을 느끼고 빨아들이는 것 마냥, 그는 진실로 모든 존재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칼날 같은 예민함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열려 있으나 무던해 보이고, 민감하나 태연한 듯 느껴진다. 마음은 물처럼 흐르며 움직이나 몸은 편안한 여유가 흘러넘치니, 거참, 이상하다. 같이 동행한 목사가 인사를 건네더니, 마음이 복잡할 때는 어떻게 하냐고 질문을 한다. “마음이 복잡한가보다, 해.” 복잡한 마음에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모른 척 지나가지도 말라는 것! 이 말을 알아들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만큼, 그 뜻이 숭고하다.
황현수 목사는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 장관으로 알려진 전라남도 임자도의 대기리교회에서 벌써 10년 째 목회하고 있다. 자연과 사람과 부대끼며 예술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광주에서 부목사로 목회하던 시절, 임자도의 교회에서 청빙 요청이 들어왔고, 산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터라, 자연 속에서 목회하게 된 기회에 감사했다고. “그 때 당시, 30대 중반의 젊은 목사가 시골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으니, 어르신들이 보기에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하지만 교인들과 마음을 열고 만나고 삶을 나누다 보니, 이제는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감수성 훈련에 관심을 갖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기도 하는 건 교인들의 지지와 격려가 바탕이 되었다고.
그의 존재를 넉넉하게 만드는 이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삶의 순간마다 ‘오!’ 하는 감탄사를 낼 줄 아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감수성이죠.” 현대인들은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쫓아 동분서주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쫓다가 지치고, 허무해지는 공허감 속에서 두리번거리게 된다고. “행복이 결코 소유에 있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은 미망, 즉 ‘마음속의 헤매임’의 상태인 것이지요.” 정반대의 이론과 주장을 했던 쾌락주의자들과 금욕주의자들이 ‘행복은 마음에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일치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 마음의 흐름과 상태를 잘 들여다보고, 마음, 느낌, 정서,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길을 모색함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풍요와 재미를 위해 감정을 종으로 주셨는데, 어느덧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본래 종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 감수성 훈련이죠. 그러할 때에 내 안의 떠오르는 감정들을 솔직하고 건강하게 잘 표현할 수 있어요.”
감정은 선하고 좋은 것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이성 중심과 머리 중심으로 사고하는 법은 익히 배웠으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법은 잘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되도록 돌려 말하고, 숨기고, 참고, 억제하는 것이 착하고 모범적이며 인격적인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을 뿐. 그러나 그러고 있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표현하기 어렵게 되었고,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나열하며 그것을 ‘느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지 못할 때에 우리는 공감을 받을 수 없으며, 여러 오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맛있다’라는 것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요. 새콤하다, 달콤하다, 매콤하다, 짭조름하다, 쌉쌀하다, 감칠맛난다 등등. 그런데 우리는 그냥 한 마디 하죠. 맛있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나타내는 수많은 단어 중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고작 몇 개뿐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감탄사를 외치셨어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람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죠. 하나님은 감정을 본래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셨고, 각기 다른 목적으로 쓰이도록 다른 사명을 부여해주셨어요.” 우리가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결국,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이라고.
일상을 아름답게
그가 안양대에서 강의를 했을 때 일이다. 하루는 날이 좋아 야외수업을 했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 하늘이, 나무가, 계절이 바뀌고 있는 걸 보여줘요.” 말하더란다. 이전에는 나뭇잎 색깔이 바뀌고 있는지, 바람이 불고 있는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조차 관심 없이 지나쳤는데, 이제는 열린 감수성으로 자연을 바라보니 못 보던 것이 보이더라는 것. “감성을 깨우게 될 때, 마음과 세상이 달라지고, 일상이 아름다워집니다. 바람 냄새, 흙내음을 맡지 못하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 감수성이라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인지치료’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그 말도 맞죠.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마음이에요. 마음에 감동이 되면 생각이 저절로 바뀌는 거죠.” 감동할 것이 점점 없어져 시대, 지치고 공허한 우리 시대의 메마른 영혼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바로 감수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거다. 그는 이러한 감수성을 일상적으로 훈련하기 위해 ‘호흡기도’와 ‘느낌언어목록’을 추천한다. “감정의 노예가 될 때 얕고 빠른 숨을 쉬게 되는데, 천천히 깊고, 느리게 쉬면서 감정에 빠져있는 자신을 성찰해보는 것이 호흡기도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관찰자가 되어보는 거죠. 들숨에 예수님, 날숨에 도와주세요, 들숨에 예수님, 날숨에 평화로 오시옵소서, 기도하는 겁니다.” 느낌언어목록은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느낌에 주목하면서 그 느낌을 만나고, 적어나가는 것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서로 표현해보고 공감해주는 인은 구체적인 일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충분히 느껴주고 나누면 사라지고, 자유로워지게 되는데, 혼자만의 비밀로 품고 있으면 그 느낌의 종이 된다는 원리이죠.”
인간에 대한 믿음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감수성 훈련은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처음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 상처의 노예로 살아갔던 이들이 사랑과 신뢰를 얻게 되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힘들지는 않을까. “그 마음의 흐름을 같이 따라가는 것뿐이에요. 힘을 빼고, 진심으로 만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오히려 상처로 가려졌던 상대의 에너지가 나오면서 구성원들과 모두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죠. 그게 또 제게 힘이 되구요.” 3박 4일 내내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공감자가 되어줌으로 ‘스스로’ 독소는 점점 빠지고, 긍정적인 좋은 기운으로 내면을 그득 채우게 된단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어요. 그 사람이 설령 살인자라 해도. 그의 마음을 수용하고 공감해줄 때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할 수 있게 되죠. 그때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것, 진짜라고 생각해요. 즉 하나님의 형상,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는 거예요.”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황현수 목사의 이름표는 ‘여운’이다. 감수성 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의 닉네임이다. 그림의 여백이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듯이, 사람에 대한 여운은 그 사람을 더욱 또렷이 만나게 하고, 공감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어 준다. “머리로 생각하는 답이 많으면 답답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느껴 보세요.” 함께 웃고 이야기 하다가 흥이 돋았을 때 갑자기 노래 한 곡조 걸쭉하게 뽑는 그는 분명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 삶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느껴야 할 것들로 충만한 것. ‘여운’님의 진한 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여운으로 남아 있다.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떨어져 끝도 없이 천천히 물들어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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