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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특집 문화선교리포트
놀지 않거나 놀지 못하거나 놀지 못하게 하는 분들이 세상을 점점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일해야 한다고 외친다. 날마다 쉼 없이 기계를 돌리고 사람을 돌리고 영혼마저 붕붕 소리가 나게 돌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노는 아이들 꼴을 못 본다. 내가 밖에서 세상과 가족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너희도 나를 따라 일하듯 공부하라고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말이다. 그리고 이겨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아이들은 공부가 일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여기저기를 들러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얼굴을 보라. 명랑한 아이들 얼굴을 스스로 잊은 지 오래다. 아이들은 힘겨운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월급도 못 받는, 월차도 낼 수 없는, 휴가도 없는 지독한 노동에 절어서 말이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다. 놀지 못하거나 놀지 않는 아이들을 나는 아이라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왜 놀아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힘을 고스란히 지금 놀거나 아니면 어려서 놀았던 것에서 가져와 쓰기 때문이다.

삶의 거울 되는 놀이판
금 밟으면 죽었다. 무슨 말인가. 우리 어려서 땅에 금 긋고 했던 놀이 말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죽는 법 없다. 다음 판에 다시 모두 부활한다. 어떤 경우는 죽었는데 동무가 달려와 살려주기까지 한다. 이렇듯 삶과 죽음과 부활을 우리는 하나의 소박한 놀이에서 숱하게 경험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처음에는 공기놀이의 ‘꺾기’가 안 된다. 그렇다고 함께 공기놀이를 하던 누나나 언니들이 “너 집에 가” 하지 않는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깍두기’ 하란다. ‘깍두기’가 무엇인가? 요즘으로 치면 약자에 대한 배려이고 관용이며 나아가 모두 평등한 출발에 서기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씀씀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경쟁’이라는 것은 사실 이런 공정한 출발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기극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또 놀이에서 처음에는 안 되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아주 쉽게 하는 경험 또한 숱하게 한다.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과 시험과 그 앞에서 좌절을. 도대체 무엇으로 이것을 지나간다는 말인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이내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 긍정의 힘을 어디서 기를 수 있단 말인가. 놀이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어려서 했던 놀이 중에 자기 혼자 잘한다고 내달리는 그런 놀이는 없었다. 왜 없었을까. 너무 쉽다. 재미가 도통 없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는데 그게 놀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놀다 보면 다툼이 생긴다. 그러나 그 다툼을 해결해줄 어떤 절대적인 권위를 누구도 놀이에서 휘두르지 못한다. 그래서 놀이는 경기나 게임하고는 다르다. 심판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놀다가 생기는 이런저런 갈등과 다툼이 놀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막가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못놀면 모두 다 심심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이처럼 자기를 스스로 돌보는 능력이 있다. 이런 조절의 힘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놀면서 피어나는 생生
살다 보면 큰 괴로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다가 정말 감당이 안될 때도 있다. 쌓이는 삶의 부정적인 찌꺼기와 쓰레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에 영혼이 깔릴 때 사람은 많이상한다. 괜찮은 방법 중 하나가 이러저러한 찌꺼기와 쓰레기가 쌓일 때마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참선하며 그때그때 치우는 방법이다. 조용히 골방에 들어앉아 고요히 빌거나 기도하다 보면 쓰레기와 찌꺼기가 어느새 조금씩 타고 마침내 재만 남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영혼의 찌꺼기와 쓰레기가 없을까. 아주 많다. 오늘날, 어른과 거의 맞먹는 정도의 찌꺼기와 쓰레기가 아이들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치울 수 있을까. 놀이였다. 어려서 동네 누나들이 공기놀이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공기놀이에 빠져들면서 누나들은 점점 정신줄을 놓아간다. 엄마가 불러도 소리 질러도 욕을 해도 못 듣고 있다가 뛰쳐나온 엄마한테 옷자락을 잡히면 그 때 비로소 깨어난다. 생각해 보라. 기도하고 묵상하고 참선을 하고 있을 때, 누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삼매에 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놀 때 바로 삼매에 든다는 말이다. 바로 이 때 아이들은 두려움과 걱정의 찌꺼기를 태운다. 그리고 놀이가 끝났을 때 아이는 놀이 전의 아이와는 아주 다른 존재가 되어 새로 태어나다시피 한다. 자, 어떻게 놀지 않고 아이들의 영혼이 맑고 푸를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놀이는 기도요, 묵상이요, 참선이요, 삼매와 같은 말이다. 어른들은 놀면서 하는 아이들의 기도를, 묵상을, 참선을, 삼매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씨앗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그런데 이 씨앗이 어떻게 싹을 틔울 수있을까. 아이들이 품고 있는 이 씨앗은 놀이라는 은혜로운 비를 맞아야 비로소 싹이 튼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다. 그래서 노는 아이는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3절에 나오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배워 마음과 몸의 평화를 찾으라는 뜻으로 새롭게 읽혀야 하리라.

편해문|놀이운동가. 안동 시골에 살고 있다. 쓴 책으로 <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 <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가 있고, 옛 아이들 노래를 음반과 함께 펴낸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 가자 감나무>, <께롱께롱 놀이노래>가 있다. 사진집 <소꿉>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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