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구속되는 사회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다.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과 마음. 어느 멋진 가을 날,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나는 ‘나는 자유다!’를 외치고 싶을 만큼 마냥 행복했다. 그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연세에 참 잘 걸으시네요.” 그 연세? 난 잠깐 내 연세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나이였던가? 그건 아니었다. 난 이제 예순을 갓 넘었을 뿐이다. 평균수명 여든을 채우려면 아직도 20년 가까이 남은 인생이다. 혹시 내가 너무 늙어 보여서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느라고 얼굴에 제대로 찍어 바르지도 못했다. “나 아직 젊어요. 이제 예순 갓 넘었는데.” 늙어 보였다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이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그 말을 한 여성도 기껏 대여섯 살 정도나 젊어 보일까. 저나 나나 비슷하게 늙어가는 주제에 나만 노인 쪽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말 속에는 가시가 들어 갈 밖에. “네, 그러니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처럼 가볍게 걸으시니 보기 좋아서 그래요.” 그는 딴에는 덕담을 건넸다가 좀 놀랐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설레발을 쳐도 하늘을 날 것 같았던 조금 전의 내 기분은 이미 반쯤 망가져 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나이에 구속된다. 우리 사회의 고질이었던 성별이나 학벌을 따지는 것에 대해선 그나마 고쳐 나가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반면 아직도 나이라는 기준은 철옹성처럼 단단해서 누구나 타인과 자신을 그 틀에 맞추어 바라보고 기대하고 재단한다. 만약 그 여성이 ‘그 연세에’라는 단어만 빼고 말을 걸어 왔다면, 또 내가 나이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웠다면, 그 날 그 순간 그 어색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 따위에는 휘둘리지 않는다고 자부했건만, 나이는 여전히 나를 옭죄고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필요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한때는 나이 든다는 것이 꽤 괜찮은 일이었다. 나이와 더불어 지혜와 관록이 쌓이고 권위가 붙기 때문에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도 있듯이 오래 사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하지만 어느 새 우리는 준비할 새도 없이 장수시대를 맞았다. 또 전 지구를 무대로 한 무한경쟁에서 이겨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도 함께 왔다. 이젠 누구나 오래 살게 되었지만 개인의 경쟁력은 더 빨리 약화되는 아주 고약한 시대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나이 들었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대접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개인과 사회의 약점으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 그 이상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하다간 나이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연히 주눅 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기나긴 인생을 끝까지 당당하게 꾸려 나가기 위해선 누구보다 나스스로 나이 듦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를 갖춰야 한다. 나이 든 사람에게 바라는 세상의 주문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나이를 잊어라’라고 충고하는 바로 그 입으로 다시 ‘나이 값을 해라’라고 요구한다. 나이를 잊고 발랄하게 행동하면 당장 ‘주책이야’라고 흉보고, 나이값을 한답시고 점잖게 굴면 또 ‘늙으면 할 수 없어’라고 비웃는다. 나이 든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짜 놓은 나이 틀에 맞추어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생긴 대로, 생각대로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하다. ‘내 나이는 내 꺼다, 남의 나이에 휘둘리지 말라’. 다시 말해서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나 생긴 대로, 내 생각대로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그저 뒤로만 숨지도 말고, 그렇다고 오로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비방을 찾는 데만 온힘을 쏟지도 말고, 그냥 느긋하고 싱싱하게 살자는 것이다.
솔직히 젊었을 때는 험한 세상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며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내가 살아온 길만 있는 게 아니라 무수하게 많은 길들이 있음을 알게 된 건 나이 듦이 주는 커다란 축복이다. 그러니 젊어 보이려고 기를 쓸 게 아니라 이제라도 제대로 나이 드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만의 나이대로 사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 세상이 한결 재미있어졌다. ‘어떤 시작도 늦지 않다’는 것을, ‘나이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니 즐겁다.
나이듦에 대하여 박혜란|웅진지식하우스
쉰 살이 지나 지친 몸이 말을 걸어왔을 때 ‘나이듦’의 의미를 깨달은 저자는, 여자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일상을통해 들여다보며‘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담아낸다. 우리 사회의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으며, 나이 들어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용기를 건넨다.
박혜란|<나이듦에 대하여>, <삶의 여성학>,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변경에서의 1년> 등의 저자. 마흔 즈음부터 여성운동과 교육운동에 열심이다가 요즘은 공동육아운동에 집중하면서 손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할머니. 여전히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넘쳐 생각만으로도 하루해가 짧다고 아쉬워하는 재미주의자. 요즘 가장 궁금한 건‘, 내가 과연 몇 살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라고.

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 김혜경|글담

나이듦을 즐긴다는 것 홍정구|파라시니어

멋지게 나이드는 법 도티 빌링턴|작은씨앗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어르신사랑연구모임|궁리

나이듦의 즐거움 김경집|랜덤하우스코리아

해피 에이징 울필라스 마이어|가야넷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다.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과 마음. 어느 멋진 가을 날,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나는 ‘나는 자유다!’를 외치고 싶을 만큼 마냥 행복했다. 그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연세에 참 잘 걸으시네요.” 그 연세? 난 잠깐 내 연세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나이였던가? 그건 아니었다. 난 이제 예순을 갓 넘었을 뿐이다. 평균수명 여든을 채우려면 아직도 20년 가까이 남은 인생이다. 혹시 내가 너무 늙어 보여서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느라고 얼굴에 제대로 찍어 바르지도 못했다. “나 아직 젊어요. 이제 예순 갓 넘었는데.” 늙어 보였다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이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그 말을 한 여성도 기껏 대여섯 살 정도나 젊어 보일까. 저나 나나 비슷하게 늙어가는 주제에 나만 노인 쪽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말 속에는 가시가 들어 갈 밖에. “네, 그러니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처럼 가볍게 걸으시니 보기 좋아서 그래요.” 그는 딴에는 덕담을 건넸다가 좀 놀랐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설레발을 쳐도 하늘을 날 것 같았던 조금 전의 내 기분은 이미 반쯤 망가져 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나이에 구속된다. 우리 사회의 고질이었던 성별이나 학벌을 따지는 것에 대해선 그나마 고쳐 나가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반면 아직도 나이라는 기준은 철옹성처럼 단단해서 누구나 타인과 자신을 그 틀에 맞추어 바라보고 기대하고 재단한다. 만약 그 여성이 ‘그 연세에’라는 단어만 빼고 말을 걸어 왔다면, 또 내가 나이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웠다면, 그 날 그 순간 그 어색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 따위에는 휘둘리지 않는다고 자부했건만, 나이는 여전히 나를 옭죄고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필요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한때는 나이 든다는 것이 꽤 괜찮은 일이었다. 나이와 더불어 지혜와 관록이 쌓이고 권위가 붙기 때문에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도 있듯이 오래 사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하지만 어느 새 우리는 준비할 새도 없이 장수시대를 맞았다. 또 전 지구를 무대로 한 무한경쟁에서 이겨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도 함께 왔다. 이젠 누구나 오래 살게 되었지만 개인의 경쟁력은 더 빨리 약화되는 아주 고약한 시대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나이 들었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대접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개인과 사회의 약점으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 그 이상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하다간 나이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연히 주눅 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기나긴 인생을 끝까지 당당하게 꾸려 나가기 위해선 누구보다 나스스로 나이 듦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를 갖춰야 한다. 나이 든 사람에게 바라는 세상의 주문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나이를 잊어라’라고 충고하는 바로 그 입으로 다시 ‘나이 값을 해라’라고 요구한다. 나이를 잊고 발랄하게 행동하면 당장 ‘주책이야’라고 흉보고, 나이값을 한답시고 점잖게 굴면 또 ‘늙으면 할 수 없어’라고 비웃는다. 나이 든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짜 놓은 나이 틀에 맞추어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생긴 대로, 생각대로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하다. ‘내 나이는 내 꺼다, 남의 나이에 휘둘리지 말라’. 다시 말해서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나 생긴 대로, 내 생각대로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그저 뒤로만 숨지도 말고, 그렇다고 오로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비방을 찾는 데만 온힘을 쏟지도 말고, 그냥 느긋하고 싱싱하게 살자는 것이다.
솔직히 젊었을 때는 험한 세상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며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내가 살아온 길만 있는 게 아니라 무수하게 많은 길들이 있음을 알게 된 건 나이 듦이 주는 커다란 축복이다. 그러니 젊어 보이려고 기를 쓸 게 아니라 이제라도 제대로 나이 드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만의 나이대로 사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 세상이 한결 재미있어졌다. ‘어떤 시작도 늦지 않다’는 것을, ‘나이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니 즐겁다.
쉰 살이 지나 지친 몸이 말을 걸어왔을 때 ‘나이듦’의 의미를 깨달은 저자는, 여자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일상을통해 들여다보며‘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담아낸다. 우리 사회의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으며, 나이 들어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용기를 건넨다.
박혜란|<나이듦에 대하여>, <삶의 여성학>,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변경에서의 1년> 등의 저자. 마흔 즈음부터 여성운동과 교육운동에 열심이다가 요즘은 공동육아운동에 집중하면서 손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할머니. 여전히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넘쳐 생각만으로도 하루해가 짧다고 아쉬워하는 재미주의자. 요즘 가장 궁금한 건‘, 내가 과연 몇 살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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