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이었다. 절친했던 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채 처음 여행을 떠났다. “인도로 갔었는데, 한 달만 다녀오겠다고 해놓고, 두 달, 세 달이 될 때까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만큼 행복했죠.” 걸프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는 이후에도 인도를 향한 그리움에 늘 목이 말랐다고. 그래서였을까. 여행하며 살아야 행복한 자신의 내적 갈망을 운명처럼 발견한 후 그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 선언하고 짐을 꾸렸다.
“모든 인생에는 자신만의 문체가 있잖아요. 모두가 똑같이,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 수는 없죠. 이렇게 여행하며 사는 것이 제 삶의 문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병환을 돌보느라 30대의 그 짜릿했던 여행을 한동안 다시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40대에는 부모님 곁에서 보냈던 시간이에요. 그땐 그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고 생각했고, 마음을 다해서 부모님 곁에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계시던 부모님도 모두 하늘나라로 가신 지금, 그는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제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들 부럽다고 해요. 마누라도, 아이도 없으니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거라고요. 물론 그렇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문득 외로움이 밀려올 때도 있고,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거죠. 전, 모두가 다 저와 같이 여행을 떠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 자기 삶의 문체를 발견하라고 하죠.”
여행에서 만난 깨달음
그는 인도를 갈 때마다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몇 달씩 자원봉사자 생활을 했다. ‘떠나는’ 여행에서 ‘머무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다. “환자들의 아픈 부위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날 제가 너무 붕대를 꽉 조여맸나 봐요. 다음 날 환자의 붕대를 풀었더니 조였던 부분이 시뻘개져서 더 아프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헐겁게 매줬죠. 근데 그 다음 날에는 그 환자가 다 풀어져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붕대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거예요. 아, 환자에 알맞게 붕대를 조절하며 묶는 일조차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이거야말로 도를 닦는 일이다 싶더라구요.” 그는 이를 ‘붕대 명상’이라 이름 지었고, 종종 인도에서 붕대명상 하고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이렇게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값진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여행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수도 없이 짐을 싸고 풀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이 ‘떠남’이 주는 설렘에 촉촉이 젖어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은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현실이란 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전 첫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요. 출발하기 전날 밤에 설레는 그 마음,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오감을 감싸는 그 기분 참 좋죠.” 나이를 먹어 갈수록 가슴 뛰는 일이 사라져가는 50대들을 향하여 인생의 첫 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떠나지 못하는 변명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여행은 준비 없이 떠나는 것이라고,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차피 삶은 여행인 것을.
조병준|그린비
시인 조병준이 체험한 캘커타의 천사들과 순수한 나눔의 향연을 담은 책이다. 그가 여행 도중에 들른 인도 캘커타 구호시설‘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다섯 번에 걸쳐 약 2년 간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친구들과 펼친 따뜻한 우정과 사랑, 나눔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떠한 조건보다도, 어떠한 편견도 없이 나 아닌 타인과‘ 마음을 같이 나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20세면 약관(弱冠)이고, 30세면 이립(而立)이며, 40세면 불혹(不惑), 50세면 지천명(知天命) 등 익히 들어 귀에 익은 덕목에 대해 그는 말한다. “평균수명이 마흔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덕목을 지금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지금은 평균수명 78세이고, 기대수명이 계속 늘어나는데 정신연령을 과거에 매여 둘 수 없거든요. 그러다보니 사회가 나이를 억압하기 시작했어요. 우리사회가 나이에 대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이 50에 귀를 뚫고 염색한 그의 모습이 낯선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대학생의 권유로 우연찮게 귀걸이를 했는데, 젊은이들은 만세를 불렀지만 주변인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고. 환호와 염려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나이를 규정하는 사회를 향한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가 아닐런지.“ 지금 우리사회는 나이에 대한 수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몸으로 체득되었던 우리사회의 나이에 대한 시스템에서 새로운 실험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해요.”
실험이 성공하려면 대중에게 익숙해져야 하는데 우리사회가 그것을 얼마나 용인해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증명해줄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지금 우리사회가 나이에 대해 실험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거예요.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거든요. 이런 실험들이 계속되다 보면 낯설지 않은 샘플들이 등장하다가 익숙하게 다가올 때쯤 변화는 일어납니다. 혁명은 친숙도의 문제거든요.”
노년의 지혜를 들여다보아야
그러나 한편으론 또 나이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분명, 세월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가볍게 맺던 20kg 배낭이 지금은 무겁거든요(웃음). 나이를 먹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노년의 지혜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필요해요. 또한 그들도 젊은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어리고 유치한 것들이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의 것을 누리려고만 했던 모습들을 깊이 있게 반성해야 합니다.” 나이가 권력일 때도 있었다. 연장자의 지혜를 존경하고 하늘처럼 대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사회에서 젊은 나이는 또 다른 경쟁력이 되었다. 값싼 젊은 노동자들 앞에서 노인들은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인류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새로운 상황은 마치 고령화로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노인들을 퇴물로 전락시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과 지혜에 대한 관심보다는 부양해야할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이는 늙음에 대한 미성숙한 인식이죠. 나이가 들어 빛나는 깊은 지혜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나이를 거역해야 할 부분들이 있고, 나이를 존중하며 그에 맞게 살아야 할 부분들도 동시에 있습니다.”
“50대여, 행복하게 놀아라. 주책과 용감함의 경계에서 고민하지 말고 낯선 세계를 향해 몸을 던져라.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머물러라. 길에서 만난 숱한 지혜들이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오늘도 그는 인연의 매듭을 지으러 여행을 떠난다. 결절들이 있어야 거미줄이 만들어지고 매듭이 있어야 밧줄이 튼튼해지듯, 서로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면 나이를 뛰어넘는 소통의 행복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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