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승리
나의 직업은 독특하다. 개인의 재무 상태를 점검해주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돈에 관한 고민을 덜어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주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재무컨설팅을 해주는 나에게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신용카드와 결별하기였다. 신용카드라는 것이 휴대가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나게 만든다. 또 후불결제, 즉 다음달에 쓸 돈을 미리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금흐름을 왜곡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하려고 찾아온 고객들에게 빚을 없애고 돈을 모으고 싶으면 신용카드부터 없애라고 강조한다.
신용카드를 자르고 나서
사실 그런 말을 하는 나조차도 신용카드를 쓰고 있었던 터라 고객에게 신용카드를 없애라고 하는 것 자체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작년 5월의 어느 날, 그동안 밀려 있었던 해묵은 숙제를 풀었다. 신용카드를 자르기 위해 가위를 든 것이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한 달 동안 써온 결제대금을 다음 달에 갚아야 하는데 막상 다음 달에 쓸 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용카드 없이 어떻게 사나 걱정도 됐지만 더 이상 미루면 결제일에 받는 스트레스와 생각 없이 돈을 쓰는 습관이 달라질 수 없고, 이왕 마음먹은 바에 미련 없이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신용카드 일곱 장에 가위질을 시작했다. 지인과 카드사 영업사원의 권유를 받을 때마다 한 장 두 장 늘어난 카드가 일곱 장이나 되다니….
이놈들만 없었어도 더 많이 저축하고 아껴 살 수 있었으리라! 당장의 걱정은 뒤로 미루어 두고 신용카드를 한 장도 남김없이 자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한 달에 백만 원에 가까운 돈을 카드로 쓰다가 하루아침에 카드 없는 삶을 시작하고 나니 예상했던 것보다 생활이 너무 괴롭고 불편해졌다. 우선, 모든 소비를 현금으로 해야 하는데 지난달 카드대금을 결제하고 나니 정작 이번 달에 쓸 돈이 많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지나가다 마음에 들면 바로 살 수 있던 것들인데 이제는 마음대로 살 수 없게 되니 살짝 짜증도 났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신용카드와 결별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제 와서 재발급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된 지출구조를 만들고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그만큼의 대가는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전략을 세워 실천하기로 했다.
사라진 충동구매, 줄어든 지출
먼저, 내가 한 달 동안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쭉 적어 내려간 뒤, 정말 필요해서 쓴 돈과 쓰고 싶어서 쓴 돈이 얼마인지 분류를 해 보았다. 막상 필요해서 쓴 돈은 많지가 않았다. 교통비와 밥값, 사람들 만나서 쓰는 돈을 빼고 보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이 꽤나 많았다. 그것을 토대로 내가 꼭 써야 할 돈의 합계를 내고 주단위로 나눠서 생활비 통장과 용돈통장, 그리고 경조사통장에 각각 자동이체 되도록 했다. 매주 정해진 돈만 쓰도록 하고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더 정확한 지출내역을 알기 위해 가계부도 썼다. 그리고 지갑에는 3만 원 이상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최대한 돈쓰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편하면 돈도 덜 쓰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신용카드가 없는 것이 처음처럼 그렇게 힘들거나 불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신용카드 없는 지금의 생활에 이로운 점이 더 많아졌다. 나에게 더 이상의 충동구매는 없다. 신용카드가 있는 것 자체로 쓰고 싶을 때 바로 쓸 수 있었던 상황과는 다르게 정해진 돈을 가지고 써야 하기 때문에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쓰게 된다. 돈을 쓰는 매 순간 신중하게 되다 보니 충동구매가 없어져 스스로 소비를 통제할 수 있게 되고, 필요한 돈만 쓰다 보니 지출도 많이 줄었다. 가끔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설 때도 있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도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생기면 돈을 모아서 산다. 카드로 할부구매를 하면 할부수수료가 붙지만, 단기적금을 부어서 사면 많지는 않아도 이자가 생긴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진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여기저기에서 비교를 하고 사니 사고 나서 후회할 일도 없다.
나에게는 이제 결제일이 없다. 신용카드를 쓸 때는 월급을 타고 며칠 후면 카드 값으로 빠지고 남은 돈이 얼마 없었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카드로 생활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다음 월급날까지 쓸 돈이 많이 남아 있다.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받던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도 늘어났다. 카드를 쓰는 동안은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하는 셈이었지만, 남는 돈으로 저축을 하게 되니 잊고 살았던 저축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차곡차곡 쌓여 가는 돈을 보면 돈 버는 것이 즐겁고 보람 있다. 상담을 하는 고객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신용카드가 없으면 생활이 힘든 사람들이 많다. 나는 늘 그들에게 말한다. “신용카드와 결별하라”고. 물론 처음에는 힘들지 모르지만 힘든 몇 달을 보내고 나면 삶의 여유와 만족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신용카드가 없는 당신의 삶은, 돈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걱정을 덜어 줄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결별하라.
공찬현|‘사회적기업 에듀머니’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맡고 있다. 서울시 저소득층 재무상담과 가계부 소모임을 통해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주체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우리집 착한 재무주치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에듀머니’는 돈으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돈으로부터 행복해지는 방법을 공유하는 경제교육 및 재무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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