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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특집 문화선교리포트

다방, 문인들의 아지트
우리나라에 다방을 먼저 연 이들은 일본인들이었다. 1920년대 초 문을 연 일본인들은 주로 일본인 대상으로 장사를 했다. 192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한국인이 창업한 다방이 생겼는데, 이는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였다. 같은 해 문을 연 ‘멕시코 다방’도 인기를 끌었다. 무용가 최승희의 나체 무용 사진이 걸리기도 했던 멕시코 다방은 언론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드나들었다. 멕시코 다방이 문을 닫은 뒤에는 ‘낙랑파라’가 문인들 아지트가 됐다. 이상·박태원·김광섭·노천명·모윤숙 등이 단골이었다. 천재시인으로 불린 이상도 다방을 차린 적이 있다. 금홍과 사랑에 빠진 이상은 1933년 7월 14일 ‘제비’ 다방을 차려 금홍을 마담에 앉히고, 1935년 9월까지 2년 넘게 다방을 운영했다. 이상은 ‘제비’ 다방 문을 닫고, 금홍이가 달아난 뒤에도 다방 ‘69’와 카페 ‘쓰루’를 개업한 바 있다. 1941년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인기를 끌던 다방문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설탕과 커피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다방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다방은 해방 이후 다시 그들을 불러들였다. 소래섭이 쓴 <‘멍’과 ‘체’, 다방과 예술가의 조건>에 따르면 손소희·전숙희·유부용 등이 개업한 ‘마돈나’, 김동·조연현 등이 드나들던 ‘플라워’, 모윤숙이 관여하던 ‘문예살롱’ 등의 다방이 문인들 모임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해방 이전 ‘낙랑파라’를 비롯해, 해방 이후 ‘플라워’가 자리를 잡으면서 소공동은 다방문화 중심지로 불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파벌에 따라 모이는 다방이 달랐다는 점이다. 1950년대 단골다방을 중심으로 모이던 문인들은 ‘모나리자’파와 ‘문예싸롱’파로 나뉘었고, 그곳에선 음악회, 미술전시회, 연극과 영화상영회가 펼쳐졌다. <격랑과 낭만>의 저자 김시철에 따르면 당시 문화인들마다 모이는 명동지역 다방이 따로따로였다고 한다. 가톨릭 문인들은 ‘청동’, 음악애호가들은 ‘돌체’, 영화인들은 ‘나일구’ 다방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출처 : 학림다방

음악다방 ‘쉘부르’를 기억하는가

1960년대엔 다방이 음악 감상소로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음악감상실 또한 인기였다. 음악다방은 가수들이 새 노래를 발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음악다방도 음악장르별로 나눠졌다. 소설가 성석제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에서 “20대였을 때 가던 다방은 대체로 ‘음악다방’이었다”며 당시 음악다방을 디스크자키가 팝과 가요를 트는 음악다방과 서양 고전음악이 나오는 클래식 음악다방으로 나누었다.
1970년대는 음악다방 전성기였다. 1970년대 명동에서 음악다방 ‘쉘부르’를 경영하기도 했던 DJ 이종환이 “두 집 건너 부동산업소가 늘어서듯 한때 두 집 건너 다방이 줄지어 섰던 시절”이라고 회상하던 때였다. 기름진 목소리로 유명 팝송과 클래식을 틀던 DJ들은 요즘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고, 사람들은 다방에서 최신 문화를 받아들였다. 한때 개그맨이었던 서세원이 퍼트린 유행어 ‘오늘은 왠지~’는 바로 그 시절 음악다방 DJ의 고정 멘트였다. 다방은 ‘사랑방’이었고 ‘문화센터’로 철학과 인생을 논하던 자리였다. 더불어 정치· 사회문제를 논하던 곳이기도 했다.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는 한 다방이 꽤 여러 번에 걸쳐 나온다. 바로 ‘은하수 다방’이다. 전태일이 평화시장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문제를 느끼고 모였던 곳이 바로 그 곳. 책 속에 묘사된 장면을 잠깐 살펴보자. “첫 번째 회합은 동화시장 아래 은하수 다방에서 열렸다. 컴컴한 다방 한 구석자리에 그들은 몰려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태일이 일어나서 ‘앞으로 우리가 친목을 도모하되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도 그렇고 평화시장 일대의 3만 명 직공들이 다 혹사당하고 있으니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 다음 기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이 날의 찻값은 태일이 전액 부담하였는데 그 뒤로도 번번이 그가 대부분의 찻값을 부담하였다.” 일부가 즐기던 커피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누구나 즐기는 음료가 됐다. 1970년 동서식품은 국내 최초 브랜드커피 ‘맥스웰하우스’를 내놓았고, 1976년엔 세계 최초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1978년에는 커피 자동판매기도 첫선을 보였고 고급 원두커피도 1980년대 후반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독특한 개성이 돋보이는 동네카페의 등장
1990년대는 체인형 카페가 등장했다. 1994년 ‘민들레영토’가 신촌에, 1999년엔 ‘스타벅스’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문을 열었다. 2009년 8월 기준으로, 각각 전국 25호점과 300호점을 개업할 정도로 인기다. 이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다방에 가는 대신 ‘스타벅스’와 ‘커피빈’에 간다. 비록 ‘별다방’, ‘콩다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지만, 진짜 다방 간판이 붙은 곳은 나이든 이들만 가는 곳이 돼 버렸다. 요즘에는 한편 똑같은 간판, 똑같은 맛을 상징하는 이들 체인형 카페들에 식상해하는 이들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한적한 동네에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 있는 카페를 차리기 시작했다. 탁자가 단 한 개나 두 개에 불과한 곳들도 있고, 드립 커피(Drip Coffee)라고도 불리는 필터 커피(Filter coffee)도 쉽게 볼 수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들이 대거 나타났다. 사진카페, 북카페를 비롯해 공방카페, 애견카페, 테디베어카페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모여 공감대를 나누기도 한다. 크고 화려한 문화에 지친 이들에게 이런 작은 동네카페들은 위안이 된다. 이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확인하면서 즐기는 곳이다. 자, 그럼 앞으로는 카페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김대홍|인왕산 중턱에서 남자 몇 명과 함께 가축처럼 살아간다. 뒷길, 골목길, 오래된 동네를 다니길 좋아하며 자전거 정도 속도와 부피로 살면 좋겠다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그 골목이 말을 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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