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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특집 문화선교리포트
에디터 김남형

“그리스의 산토리니보다 우리네 달동네가 더욱 가치 있다.”
‘뉴타운’의 획일화된 개발과 ‘디자인서울’ 등의 겉모습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서울 도심이 귀를 기울여야 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외친 이가 있다. 우리 집 계단이 이웃집 담벼락이 되는 공간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달동네야말로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닌 지혜의 보물창고라는 건축가 승효상 씨. 건축에 대한 진정한 고뇌는 사라지고 성형중독 환자처럼 지우고 덮어쓰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현재가 씁쓸하기만 하다. 건축가이기 이전에 이미 한 사람의 자연인, 철학자, 미학자, 그리고 신앙인으로 오롯이 진실의 길을 영조(營造)해 가고 있는 그를 만나 ‘사람다운 삶’을 지어가는 건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신만의 건축을 찾기까지
건축가의 사무실은 어떻게 건축되어 있을까. 작업실에 들어서자, 클래식이 흐르는 책상 위에서 어지러이 놓인 도면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들어온다. 89년 문을 연 그의 사무소 이름은 ‘이로재(履露齋)’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새벽마다 아버님 댁까지 이슬을 밟고 가 몸으로 데운 웃옷을 아버님께 둘러 드렸던 효성 깊고 바지런한 선비의 집이라는 뜻이죠.” 이로재에서 탄생한 승효상의 건축물에는 그 선비의 성실함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한국건축의 대부(大夫) 김수근 선생 문하에서의 15년, 그는 건축가가 되어갔다. “그 분 밑에서 건축가의 모든 소양과 자질을 연마했죠. 사실 김수근보다 더 김수근다운 건축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더 이상 ‘김수근 건축’이 아닌 ‘승효상 건축’을 해야 했다. 세상과 스승,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건축 말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고민하고 느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진정한 나를 찾는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영향 받았던 신앙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났던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니, 현재 제 건축의 철학과도 상당부분 일치하네요.” 

 
건축의 의미를 새롭게 건축하다  
건축을 통해 ‘나’를 찾았던 사람, 그의 순례길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춘기 시절 미술학도가 되고 싶은 꿈이 부모님에 의해 좌절되었고, 존재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마저도 무산됐다. 누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합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축학과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입시를 정확히 석 달 남긴 시점이었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공부에 매달려 서울대 건축과에 입학하지만 일 년 동안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학년이 되자 드디어 건축을 배우겠구나 하며 기대에 부풀었는데 본과 첫 수업시간 교수님 첫 마디가 제도기 사용법에 관한 것이었어요. 분노가 차올랐죠.” 그는 교수에게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는 강의실을 뛰쳐나와서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 군부독재의 강제휴교령이 선포되어 갈 수도 없었지만. 그의 분노는 자신이 해야 할 건축에 대한 갈증을 더욱 증폭시켰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했다.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 그는 건축가요 혁명가인 아돌프 로스와 만나면서 건축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는 건축을 예쁘게 잘한 사람은 아니라, 건축을 통해 혁명을 이룬 사람이었어요.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로 비엔나 사람들에게 모더니즘을 촉발시켰죠. 장식이 필요 없는 시대에 장식에 매달리는 것은 시대에 대한 죄악이라는 말이었죠. 지식인으로서 경계에 서서 타성을 질타하고 끊임없는 물음을 제기했던 로스의 건축을 만난 건 충격 이상이었어요. 내가 목숨 걸고 해봐도 괜찮은 일이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저 건물을 하나 올리는 것이 아닌, 사람을 바꾸고, 마을을 바꾸고, 도시와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의 창조행위로서 건축은 그에게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축의 가치는 가짐보다 쓰임이고, 더함보다는 나눔이며, 채움보다는 비움이었다.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죠. 결국 공간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곳이어야 해요.” 그는 92년 비어있음과 반 기능, 침묵의 건축인 <빈자의 미학>을 세상에 소개한다. 대표적 작품 <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등에서 그는 타성에 젖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교회 건축은 무엇일까. “교회 건축은 많이 벌어지지만 교회다운 건축은 별로 없어요. 교회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 없이 각종 이상한 부호와 상징을 모아 놓는데, 그런다고 교회는 아니죠. 네온사인을 휘감고 교회라고 강변하는 건물이 많잖아요.”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교회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지역과 어울리는 외형을 갖추며, 마당 등의 장소를 주민들과 공유하는 공공성이 풍부한 건물이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요즘 “네가 예술가임을 잊지 마라.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는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경구가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고 한다. “건축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았는가 묻는다면 아직 못 찾은 것 같아요. 다만 가장 중요한 건 자존심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건축인으로서의 자존심 말이죠. 후배들에게도 늘 분노를 품고 살라고 얘기해줘요. 그것이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항상 새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끝이 없을 거예요.” 아직 그는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땅에는 지문이 있습니다. 그 지문대로 그 땅에 맞게 건물을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건축 의뢰를 받으면 제일 먼저 그 땅에 가 본다. 땅을 밟고 땅의 소리를 들으면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 땅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뚜렷이 그려진다고. ‘비움’과 ‘사람다움’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땅과 함께 유형의 공간으로 세워 나가는 매력적인 예술가, 승효상. 한 사람의 인생을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 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공간에 대한 소박함 꿈을 위해 그는 오늘도 땅의 계시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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